엔딩노트

우리는 왜 죽음이 닥친 뒤에야 죽음을 이야기하는가?

다비코 2026. 8. 29. 09:07

죽음을 이야기하는 법, 전 세계 '데스 페스티벌' 

죽음을 공개적으로, 편하게, 심지어 즐겁게 이야기해보자는 시도는 이제 몇몇 별난 도시의 실험이 아니다. 유럽과 아시아,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지르며 하나의 국제적 흐름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형태는 제각각이지만, 뿌리를 따라가 보면 놀랍도록 닮은 질문 하나에 닿는다. "우리는 왜 죽음이 닥친 뒤에야 죽음을 이야기하는가?"

모든 것의 시작 - 차 한 잔과 케이크, 데스 카페

이 흐름의 원류를 찾아가면 화려한 축제가 아니라 아주 소박한 모임 하나가 나온다. 2004년 스위스 사회학자 베르나르 크레타즈가 뇌샤텔에서 처음 연 '카페 모르텔(café mortel)'. 그리고 2011년, 영국 런던 해크니에서 존 언더우드와 그의 어머니 수 바스키 리드가 이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받아 첫 '데스 카페(Death Cafe)'를 열었다.

형식은 단순하다. 낯선 사람들이 카페에 모여 차와 케이크를 앞에 놓고 죽음에 대해 편하게 이야기 나눈다. 애도 상담도, 정해진 결론도 없다. 그저 '토론 모임'일 뿐이다. 이 소박한 모임이 어떻게 퍼졌는지를 보면 놀랍다. 2025년 기준 전 세계 90개국 이상에서 2만 1천 회 넘게 열렸고, 특히 영국에서는 3,400개 넘는 그룹이 활동 중이다. 흥미로운 건 죽음 이야기를 유독 어려워하는 나라일수록 데스 카페가 더 활발하다는 점이다. 침묵이 깊을수록, 그것을 깨려는 시도도 간절해지는 모양이다.

바로 이 데스 카페에서 '죽음 긍정(death positive)'이라는 개념이 파생됐다. 그리고 이 개념은 이후 등장한 모든 죽음 축제의 사상적 토대가 됐다.

네덜란드, 관을 실은 자전거가 거리를 돌다

마스트리흐트에서는 2년마다 'Festival Voor Mijn Dood(나의 죽음을 위한 축제)'가 열린다. 완화의료·애도 지원 기관들의 연합체가 비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이 축제의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2022년 첫 회에 등장했다. 관을 실은 화물자전거가 도심 거리를 돌아다녔고, 사람들은 관에 자신의 생각을 적거나 세상을 떠난 이에게 편지를 썼다.

2024년 두 번째 축제에서는 무연고 장례, 완화의료,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전통 애도 의식 등으로 프로그램이 확장됐고, 2026년 세 번째 축제에서는 상속법, 디지털 유산, 지속가능한 시신 처리 방식 같은 실용적 주제가 대거 포함됐다. 성당과 극장, 광장 곳곳이 무대로 쓰이며 시민들이 도시를 걸어 다니다 자연스럽게 프로그램과 마주치는 구조다. 이곳에서 죽음은 조용히, 그러나 아주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할 인생의 한 단계로 그려진다.

일본, 이토 준지의 관 앞에 줄을 서다

같은 문제의식이 전혀 다른 얼굴로 나타난 곳이 도쿄 시부야다. 매년 4월 '좋은 죽음의 날(4월 14일)'을 전후해 시부야 히카리에에서 열리는 'Death페스'는 오감으로 죽음을 체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가장 큰 화제를 모은 것은 호러 만화가 이토 준지와 협업한 관에 직접 들어가보는 입관 체험이었다. 향으로 죽음관을 체험하는 프로그램, 기독교식 모의 장례식, 승려들이 참여한 패션쇼, AI가 만들어주는 영정사진,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이 담긴 포춘쿠키형 굿즈까지, 무겁지 않고 감각적으로, SNS에 올리고 싶어지는 방식으로 죽음에 접근한다. 2025년에는 약 4,200명이 방문했고, 그중 4분의 1이 10대·20대였다. 아직 죽음이 멀게 느껴질 법한 세대가 오히려 이 축제를 찾는다는 사실이, 이 실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영국, 학술과 치유가 만나는 자리

데스 카페의 발상지답게 영국은 좀 더 깊이 있는 방향으로 이 흐름을 발전시켰다. 2020년 브리스톨대학교에서 출발한 'Good Grief Festival'은 2024년 독립 사회적기업으로 분사했고, 웨스턴수퍼메어에 이어 헤이스팅스·블랙풀로 무대를 넓혀가고 있다. 2026년 5월 헤이스팅스 행사에서는 신경과학자가 무대에 올라 애도가 뇌와 몸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설명하고, 관객과 함께 회복의 방법을 이야기했다.

이 흐름은 지자체 단위로도 번지고 있다. 2026년 2월에는 게이츠헤드 시의회가 지역 최초의 '연민 축제(Festival of Compassion)'를 열어, 도서관 같은 일상 공간에서 임종과 죽음, 애도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다. 마스트리흐트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체험보다는 연구자·완화의료 전문가·유족이 함께 만드는 학술적이고 치유적인 색채가 짙다.

미국, 예술로 시작해 온라인으로 진화하다

샌프란시스코의 'Reimagine End of Life'는 2016년 디자인 컨설팅사 IDEO의 프로젝트에서 출발했다. 2018년에는 일주일간 100여 개 팀이 참여해 도시 곳곳에서 워크숍과 공연을 열었고, 오프닝 행사에는 교향악단 지휘자와 오페라 가수까지 무대에 섰다. 이듬해에는 열흘간 250개 넘는 프로그램으로 규모가 커졌다.

다만 이 축제는 팬데믹을 거치며 방향을 틀었다. 2026년에는 'Grief in Our Time'이라는 이름의 온라인 서밋으로 형태를 바꿔, 도시 축제보다 디지털 커뮤니티 플랫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대면 축제라는 형식 자체가 지속가능성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마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의 임종체험 행사


한국은?

한국에도 비슷한 시도들이 없는 건 아니다. 웰다잉 박람회가 (가끔)열리고 엔딩노트가 판매되며, 일부 상조회사의 임종체험 프로그램에는 젊은 층의 참여도 점점 늘고 있다. 남양주의 한 교육원에서는 인생 관찰부터 죽음 명상, 마지막 편지쓰기로 이어지는 7단계 임종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국내판 데스 카페도 조용히 문을 열었다.

하지만 냉정히 말하면, 한국의 시도는 아직 '개별 프로그램' 단계에 머물러 있다. 상조회사가 운영하는 임종체험, 지자체나 복지관이 여는 일회성 강연, 소규모 데스 카페 모임 - 이런 조각들은 있지만, 마스트리흐트나 시부야처럼 도시 전체를 무대로 삼아 시민이 자연스럽게 걸어 들어가는 '축제'로 응집된 사례는 아직 없다.

한번 해보면 어떨까

한국이야말로 이런 축제가 절실한 조건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 초고령사회 진입 속도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축에 들고, 1인 가구와 고독사는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아졌지만, 정작 가족이나 이웃의 죽음을 가까이서 지켜볼 기회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런데도 죽음은 여전히 장례식장 안에서만, 그것도 가장 경황없는 순간에 몰아서 이야기되는 주제로 남아 있다.

거창하게 시작할 필요는 없다. 서울이나 대전, 부산 같은 도시의 한 골목이나 광장에서, 상조업체가 아닌 지역 병원·호스피스·복지관·대학이 함께 손잡고 작은 실험을 해볼 수 있다. 관이 아니어도 좋다. "당신은 어떤 마지막을 원하는가", "가족에게 꼭 남기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같은 질문을 적을 수 있는 작은 부스 하나로도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엔딩노트를 써보는 워크숍, 상속과 디지털 유산을 다루는 실용 강연, 완화의료 전문가와의 대화, 그리고 이걸 무겁지 않게 풀어낼 공연이나 전시 한두 개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형식이 아니라 순서를 바꾸는 것이다. 죽음이 닥친 뒤에 허둥지둥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을 때 미리 이야기해보는 것. 마스트리흐트도, 시부야도, 브리스톨도, 처음엔 다들 작은 실험에서 시작했다. 관을 실은 자전거 한 대, 카페의 테이블 하나, 대학 캠퍼스의 작은 워크숍 하나가 지금의 국제적 흐름을 만들었다. 거창한 기획서도, 큰 예산도 필요 없었다. 필요했던 건 그저 "이야기해보자"는 한마디였다. 한국의 첫걸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