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진단서에서 시신까지 - 병원이 죽음 이후를 쥐면 벌어지는 일
인천에서는 서류 한 장이, 케냐에서는 장례 전체가 멈췄다
2026년 7월 7일 오후 5시 10분, 인천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70대 여성이 숨을 거뒀다. 아들 B씨는 딱 한 시간 뒤 원무과를 찾았다. 사망진단서를 받기 위해서였다. 돌아온 답은 이랬다. "병원비를 정산해야 발급해드릴 수 있습니다." 요구한 금액은 300만 원.
어머니가 숨을 거둔 지 60분. 아직 장례식장에 빈소도 차리지 못한 시점에, 아들은 서류 한 장을 받기 위해 지갑부터 열어야 했다. 나중에 확인된 실제 정산액은 80만 원. 병원이 처음 부른 금액의 3분의 1에도 못 미쳤다. 어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였고, 의료급여 대상자였다. 병원은 "발급을 거부한 게 아니라 사전 고지였을 뿐"이라며 반박하고 있다. 사실관계는 아직 다투는 중이다.
다만 한 가지, 다투지 않는 사실이 있다. 유족이 사망진단서 발급 요청 시점에 병원비 정산을 조건으로 제시받았다는 것. 그리고 의료법 제17조는 정당한 사유 없이 사망진단서 발급을 거부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며, 병원비 미납은 그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
사망진단서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사망진단서가 없으면 화장 예약도, 매장 허가도, 그 무엇도 시작될 수 없다. 장례의 첫 단추가 잠긴다. 병원이 요구한 건 진료비가 아니라 죽음을 공식화하는 서류였고, 그 서류를 미끼로 돈을 받으려 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이 사건이 아직 진위가 다투어지는 개별 민원 수준인데도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병원이 장례식장을 직영하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병원은 이미 죽음과 관련된 절차 하나(사망진단서)를 쥐고 있다는 사실 자체다. 장례식장을 갖고 있지 않은 동네 병원에서도 이런 지렛대는 존재한다. 그렇다면 병원이 장례식장까지 직영해서 염습, 빈소, 관, 운구까지 손에 쥐면 어떻게 될까. 인천 사건이 아직 서류 한 장 수준에서 다투어지고 있는 지금, 그 답을 지구 반대편 케냐가 몇 년째 아주 구체적으로, 그것도 확정된 판결과 통계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과 케냐는 병원이 장례식장을 직접 운영하는 구조를 가진 국가다. 병원이 치료와 사망진단서 발급에 이어 장례식장 운영까지 맡으면, 환자와 유족은 의료 서비스 제공자이자 장례 절차를 통제하는 주체와 동시에 거래하게 된다.

케냐, 지렛대가 장례식장 전체로 확장됐을 때
사건 1. 석 달간 멈춘 장례
카나 병원(Cana Hospital Ltd)에서 치료받던 에릭 안젠조가 사망했다. 병원비는 440만 실링. 유족이 감당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병원은 우마쉬 장례식장(Umash Funeral Home)에 지시했다. 방부처리도, 염습도, 빈소 개방도, 관 인도도 하지 말라고.
석 달이 흘렀다. 미망인 그레이스 아디암보는 남편의 몸을 씻길 수도, 옷을 입힐 수도, 얼굴을 볼 수도, 묻을 수도 없었다. 2026년 7월, 나이로비 고등법원 패트리샤 냐운디 판사는 병원과 장례식장에 시신을 무조건 인도해 "최종 의례"를 치르게 하라고 명령하고, 정신적 고통에 대한 배상금 100만 실링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판사는 병원의 채권 자체는 인정했다. 다만 "그 채권을 회수하겠다고 장례를 저당 잡는 것은 별개의 불법"이라고 못박았다.
병원은 시신을 직접 붙들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지시 한마디만 내렸을 뿐이다. 방부처리, 염습, 빈소, 시신 인도... 장례식장이 제공해야 할 서비스 하나하나가 그 지시 한마디에 멈췄다. 인천에서는 서류 하나가 멈췄다. 여기서는 장례식장의 기능 전체가 멈췄다.
사건 2, 국립병원이 직영하는 장례식장에서도 똑같은 일이
카나 병원 하나만의 일이었다면 예외적 일탈로 넘어갈 수 있다. 그런데 케냐에서 가장 상징적인 국립 대학병원, 케냐타대학교부속병원(KUTRRH)이 직영하는 케냐타 메모리얼 장례식장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2025년 첫 번째 사건. 사회건강청(SHA)이 병원비 62만 2,720실링을 이미 지급했고 유족도 10만 실링을 낸 상태였다. 남은 잔액은 59만 6,995실링. 장례식장은 여기에 26만 6,000실링을 더 내야 관을 봉인하고 운구하겠다고 버텼다. 케냐 의사·치과의사협의회(KMPDC)가 인도 명령을 내려서야 절차가 재개됐다.
2025년 두 번째 사건. 2025년 11월 3일 사망한 환자의 병원비 75만 346실링을 두고, KUTRRH는 시신 인도 자체를 미뤘다. 유족 M.N.이 행정정의위원회(CAJ, 옴부즈만)에 진정을 넣었고, 옴부즈만이 2026년 1월 8일 KMPDC와 보건부 차관보 선까지 사안을 격상시킨 뒤에야 병원이 시신을 내줬다. 이 사건에서 옴부즈만이 인용한 판례가 또 있다. 몸바사 병원 사건(Norah Masitza Mamadi 대 Mombasa Hospital Association)에서 법원은 "병원은 사망자의 시신을 채권 담보로 잡을 수 없다"고 이미 판시한 바 있다.
한 병원에서, 같은 유형의 사건이 몇 달 간격으로 두 번 반복됐다. 그것도 국립 대학병원, 케냐 의료 시스템의 '모범 사례'로 홍보되는 곳에서다.
사건 3, 병원과 장례식장이 채권 추심 수행
나쿠루 요양병원에서 치료받던 훔프리 키게라 므와이가 2021년 9월 4일 사망했다. 병원비 500만 실링 미납을 이유로 병원은 시신 인도를 거부하고 우마쉬 장례식장으로 옮겼다. 그 뒤 5년이 흘렀다. 안치·보존료는 2025년 7월 기준 246만 실링까지 불어났다. 병원비와는 별개의 금액이다. 2026년 6월 4일에야 나쿠루 고등법원이 인도를 명령했다. 장례식장 측은 법정에서 "병원의 서면 승인 없이는 내줄 수 없다는 계약에 따라 움직였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계약으로 묶여 채권 추심 기능을 대신 수행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법정 기록으로 남았다.

이게 몇 건이 아니라 몇백 건이다
케냐 보건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이건 개별 일탈이 아니라 구조다. 2019년 국회 보건위원회 청문회에서 보건부 차관보 수전 모차체는 전국 11개 병원이 환자 300명, 시신 391구를 총 67억 실링(약 570억 원) 규모의 미납금을 이유로 억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중 케냐타 국립병원(KNH) 한 곳에서만 환자 184명, 시신 387구를 56억 9,000만 실링 미납으로 붙들고 있었다.
환자를 살아있는 채로도 붙잡아 두는 것이 이 구조의 또 다른 얼굴이다. 2018년 나이로비 여성병원 사건에서는 다니엘 킬룬도 음웽가가 병원비 100만 실링을 이유로 완치 후에도 퇴원하지 못한 채 억류됐다. 고등법원 윌프리다 오크와니 판사는 이를 위헌으로 판시했다. 같은 병원을 상대로 한 또 다른 사건(에마 무토니)에서는 법원이 불법 억류에 대한 배상금 300만 실링을 명령하면서, 억류 기간에 발생한 추가 비용은 환자가 낼 의무가 없다고까지 판시했다.
법이 만들어지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케냐의 대응은 결코 느리지 않았다. 2025년 9월, 마터 병원 사건(Mutua v Mater Misericordiae Hospital)에서 고등법원은 "케냐에는 병원이 환자나 그 유해에 대해 유치권을 가진다는 법 규정이 없다. 시신에는 소유권이 없으므로 유치권도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담당 판사 닉슨 시푸나는 판결문에 이렇게 썼다. "시신 억류는 유족을 협박하고 굴욕감을 주어 금전 요구에 굴복시키는 수단으로 쓰여 왔다."
2025년 10월, 케냐 국회 보건위원회는 환자·시신 억류를 형사처벌하는 보건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이 법안은 보건법에 제7A조를 신설해, 병원 관리자가 억류에 관여하면 징역형, 기관에는 최대 200만 실링의 벌금을 부과한다.
그런데도 계속됐다. 2026년 7월 보도에 따르면, 시푸나 판결이 나온 지 8개월 만에 무랑가 키구모의 한 가족이 여전히 병원비 때문에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고 있었다. 법원의 위헌 판결도, 국회의 형사처벌 법안도, 현장의 관행을 곧바로 멈추지는 못했다. 판결과 입법이 있어도 구조 자체가 남아 있으면 관행은 살아남는다는 것, 이것이 케냐가 남긴 가장 중요한 교훈이다.
두 나라, 같은 지렛대
인천에서는 서류 한 장이, 나이로비와 나쿠루에서는 장례 절차 전체가 지렛대가 됐다. 크기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다르고, 인천 사건은 아직 병원 측 반박이 엇갈리는 다툼 중인 사안이다. 그러나 두 사건이 보여주는 원리는 같다. 죽음과 관련된 무언가{서류든, 염습이든, 빈소든, 운구든)를 쥐고 있는 쪽이 그것을 대가로 돈을 요구할 수 있다. 병원이 그 무언가를 하나(서류)만 쥐고 있어도 이런 분쟁이 생긴다. 병원이 장례식장까지 직영해 그 무언가를 전부(염습·빈소·관·운구) 쥐면, 케냐처럼 지렛대의 범위와 강도가 통째로 커진다.

무엇을 해야 할까
케냐가 3년 넘게 증명한 건 이거다. 판결과 법안만으로는 구조를 못 이긴다. 구조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관행은 살아남는다. 한국은 아직 케냐만큼 가지 않았다. 그러나 인천 사건이 보여주듯, 병원이 죽음과 관련된 절차 하나를 지렛대로 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는 이미 한국에도 있다. 병원이 장례식장까지 직영하는 지금의 구조는, 그 지렛대가 커질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방향은 분명하다. 의료법을 개정해 병원의 장례식장 신규 허가를 제한하고, 기존 병원 부속 장례식장은 단계적으로 법인을 분리해야 한다. 동시에 사망진단서 발급을 병원비 정산과 조건부로 연계하는 행위에 대해 의료법 제90조의 처벌 조항을 실효성 있게 적용해야 한다. 케냐처럼 판결과 법안이 나온 뒤에도 관행이 남는 것을 막으려면, 애초에 병원이 이 지렛대를 손에 쥐지 못하도록 구조를 분리하는 것이 먼저다. 한국이 케냐의 판결문을 뒤늦게 베끼는 나라가 되기 전에.
의료 선진국이라 자부하는 한국과, 시신 억류로 국제 인권 보고서에 오르내리는 케냐. 여러 지표를 놓고 보면 두 나라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러나 병원이 장례식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단 하나의 사실 앞에서는, 두 나라는 이미 같은 줄에 서 있다. 구조가 같으면, 결과도 언젠가 같아진다.
인천 사건은 병원 측이 "발급 거부가 아닌 사전 고지"였다고 반박하며 양측 진술이 엇갈린다. 케냐 사례들에 대해서도 병원 측은 대개 "미수금 회수 수단이 마땅치 않은 현실에서 나온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을 취해왔다. 다만 케냐 법원은 이 반론에 대해 일관되게 "채권은 민사 절차로, 장례는 별개로"라는 원칙을 유지해왔고, 국회도 이를 입법으로 뒷받침하는 단계까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