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회귀

버섯이 관이 되는 루프 바이오텍 이야기

다비코 2026. 9. 18. 11:17

Loop Living Cocoon - Loop Biotech

 

시작은 졸업 작품이었다

 

2019년, 델프트 공과대학교의 한 건축학과 졸업 전시장에 다소 기이한 물체 하나가 놓였다. 사람 하나가 누울 수 있는 크기의, 매끈하고 살구빛이 도는 캡슐. 손으로 만지면 스티로폼처럼 가볍지만 나무처럼 단단했다. 설계자인 밥 헨드릭스(Bob Hendrikx)는 이 작품이 몇 년 뒤 유럽 전역의 장례식장을 바꿔놓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가 만든 것은 관이었다. 다만 재료가 나무가 아니라 버섯이었다.

 

헨드릭스와 로네커 베스트호프(Lonneke Westhoff)는 졸업 프로젝트에서 자연과 공생하는 건축 재료를 탐구하다가 숲에서 답을 찾았다. 죽은 나뭇잎과 나뭇가지를 흙으로 되돌리는 존재, 균사체였다. 두 사람은 죽은 나무가 살아있는 나무보다 더 값진 취급을 받는 세상이 이상하지 않은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2020년 루프 바이오텍을 창업했다. 그들의 목표는 단순했다. 인간이 살아있을 때뿐 아니라 죽은 뒤에도 자연에 보탬이 되는 존재로 남게 하자는 것이었다.

 

버섯은 원래 지구 최고의 분해자다

 

균사체는 버섯의 뿌리와 같은 실 모양 조직이다. 눈에 보이는 버섯은 이 거대한 지하 네트워크가 잠깐 지상으로 밀어 올린 열매에 불과하다. 자연에서 균사체는 죽은 유기물을 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영양분으로 바꾸는 역할을 하며, 전체 식물종의 92퍼센트가 이 협력 관계에 의존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루프 바이오텍은 이 능력을 그대로 장례 산업에 옮겨왔다. 사람이 죽으면 흙에 묻히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죽음이 다시 나무 한 그루의 양분이 되는 순환을 만들고자 한 것이다.

 

Loop Living Cocoon - Loop Biotech

 

4개의 제품, 하나의 철학

 

루프 바이오텍의 라인업은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리빙 코쿤(Living Cocoon)은 세계 최초의 균사체 관으로 불린다. 지역에서 채취한 버섯 균사체와 업사이클링한 대마 섬유를 틀에 넣어 7일 만에 관 형태로 키워낸다. 화학 접착제나 금속, 유약을 전혀 쓰지 않으며 안감은 이끼로 채운다. 매장 후 30일에서 45일 사이에 분해가 시작되어 토양에 영양분을 되돌려준다. 무게도 인상적인데, 일반 목관이 빈 상태로 약 90킬로그램에 달하는 반면 리빙 코쿤은 27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초기에는 995유로 수준이었으나 현재 공식 판매가는 3,950달러에서 4,245달러 사이로 형성돼 있다.

 

어스라이즈(EarthRise)는 화장을 선택한 이들을 위한 균사체 유골함이다. 흙에 묻으면 45일 안에 분해되며 그 자리에 나무나 화초를 심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실내 장식용으로 쓰면 반영구적으로 형태가 유지되는 점도 특징이다. 초기 가격은 약 197유로였으나 현재는 225달러에서 350달러 사이로 책정돼 있다.

 

포레스트베드(ForestBed)는 관 없이 자연장을 원하는 이들을 위한 개방형 운구대다. 시신을 생분해 천으로 감싸 이끼가 깔린 침상에 안치하는 방식이다.

 

퓨어에버(FurEver)는 반려동물을 위한 균사체 유골함으로, 두 가지 용량으로 나온다.

 

"관은 타지 않고 자란다"는 이야기가 언론을 사로잡다

 

2023년 AP통신이 델프트의 공장을 취재하면서 이 작은 스타트업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헨드릭스는 인터뷰에서 인상적인 표현을 남겼는데, 요약하면 이렇다.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고 그것으로 끝이라는 이야기 대신, 죽음 이후에도 새로운 나무나 식물로 계속 살아갈 수 있다는 새로운 서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CBS 뉴스, Core77, 인터레스팅 엔지니어링 등 여러 매체를 통해 반복해서 인용됐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25년 6월 Fast Company의 보도였다. 아버지가 나무 아래 맨몸으로 묻히고 싶다고 늘 말했던 딸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가장 먼저 전화를 건 곳이 바로 이 네덜란드 회사였다. 그렇게 그녀의 아버지는 미국에서 최초로 리빙 코쿤에 안치된 인물이 되었다. 그 시점까지 회사는 유럽에서 약 2,500개의 관을 판매한 상태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시장 공략이 본격화됐다.

 

자금 조달과 사업 확장

 

2024년 3월, 루프 바이오텍은 유럽 최대의 지속가능 프로젝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인베스도르(Invesdor)를 통해 200만 유로 조달에 나섰다. 250유로라는 낮은 투자 문턱을 설정해 누구나 주주가 될 수 있도록 했고, 목표액 조달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자금은 생산 자동화와 유통망 확장에 투입됐다. 이후 미국에서는 타이탄 캐스킷(Titan Casket), 패시지스 인터내셔널(Passages International) 같은 유통사를 통해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캐나다에서는 마운트 플레전트 그룹이 최초로 이 제품을 취급하게 됐다.

Loop Living Cocoon - Loop Biotech

 

그러나 모든 주장이 검증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업계 전문 매체들은 균사체 관이 내세우는 마이코리미디에이션, 즉 균류가 시신 속 독소를 정화한다는 주장이 독립적인 연구로 충분히 입증됐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관 자체의 생분해 속도는 비교적 잘 정리된 편이지만 그 과학은 여전히 발전하는 단계이며, 소비자는 마케팅 문구가 아니라 확실히 검증된 사실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조언이 뒤따른다. 또한 균사체 소재의 실제 환경 영향을 다룬 학술 연구를 보면, 친환경성은 재료 자체의 속성만이 아니라 배양 과정에서 쓰이는 전력원과 운송 거리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이 확인된다. 버섯이라서 무조건 친환경이라는 단순한 도식은 성립하지 않는 셈이다.

 

정리

 

루프 바이오텍은 좀처럼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장례 산업에 생물학이라는 낯선 도구를 들고 들어온 보기 드문 사례다. 유럽에서 수천 건의 판매 실적을 쌓았고, 크라우드펀딩과 미국 진출이라는 두 단계 도약을 성공적으로 지나왔다. 다만 "완전 생분해", "독소 정화" 같은 핵심 주장 중 일부는 아직 독립적 검증이 더 필요한 영역이라는 점은 균형 잡힌 시각으로 기억해둘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