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빈소장'이라는 이름이 가족장을 눈치 보게 만든다

'무빈소'는 장례의 방식이 아니라 빈소의 유무를 기준으로 붙인 이름이다. 조문객을 받을지 말지, 그 하나의 사실을 설명하는 말일 뿐이다. 그러나 그 이름은 실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하는 것처럼 들린다. '무(無)'라는 접두어는 '있어야 할 것이 없다'는 인상을 남기고, 빈소가 없는 장례를 마치 '무언가 빠진 장례'처럼 느끼게 만든다. 실제로는 조문객을 받을 계획이 없는 가족이 자연스럽게 선택한 가족장일 뿐인데, 이 이름 하나 때문에 부족한 선택처럼 느껴지고 눈치가 보일 수 있다.
이름이 만드는 그 느낌에 속지 마라. 빈소의 유무는 결핍의 문제가 아니라 필요의 문제다.
'무빈소 장례'라는 이름이 가족장을 눈치 보게 만든다
용어 하나가 사람의 선택을 바꾼다. 같은 장례라도 어떤 이름을 붙이느냐에 따라 부족한 선택이 되기도 하고, 자연스러운 선택이 되기도 한다. 지금 '무빈소 장례'라는 이름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원래 있던 것에 새 이름을 붙이면 생기는 일
빈소 없이 가족끼리 조용히 치르는 장례는 새로운 방식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가족 중심으로 치르는 장례는 '가족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안치와 입관, 발인, 화장까지 필요한 절차는 그대로 진행되고, 가족이 고인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과정도 달라지지 않는다. 빈소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장례의 본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같은 형태를 '가족장'보다 '무빈소 장례'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언뜻 보면 단순한 명칭의 변화처럼 보이지만, 이름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인식을 만드는 틀이기도 하다.
'가족장'이라는 말에는 결핍의 의미가 없다. 가족 중심으로 치르는 하나의 장례 방식이라는 설명에 가깝다. 반면 '무빈소'라는 표현은 '있어야 할 빈소가 없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무(無)'라는 접두어는 의도와 무관하게 결핍을 떠올리게 만든다. 같은 장례인데도 이름 하나로 부족한 선택처럼 느껴질 수 있는 이유다.
이름이 만드는 심리
소비자는 상품의 내용만으로 선택하지 않는다. 이름과 표현에도 영향을 받는다.
빈소를 사용하지 않는 가족장은 100만~200만 원 안팎에서도 가능하지만, 빈소를 마련하는 일반 장례는 경우에 따라 1,00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두 선택지 사이의 차이는 장례 절차보다 빈소와 접객 비용에서 크게 발생한다.
그런데 '무빈소'라는 표현은 소비자에게 "무언가를 하지 않는 장례", "무언가가 빠진 장례"라는 느낌을 줄 수 있다. 그 순간 장례의 필요성을 따지기보다, 혹시 부모님께 부족하게 해드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심리적 부담이 생길 수도 있다.
그 부담은 결국 주변의 시선으로 이어진다. "부모님 장례를 너무 간소하게 치른 것 아니냐", "빈소도 없었다더라"는 평가를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는 조문객을 받을 계획이 없고 접객이 필요하지 않은 가족이라도, 이런 심리 때문에 빈소를 추가로 선택하는 경우가 생길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누구에게 유리한 이름인가
여기서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무빈소 장례'라는 이름은 누구에게 가장 유리한가.
'가족장'이라는 이름이었다면 소비자는 조문객 규모와 가족의 의사에 따라 빈소를 사용할지 말지를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빈소'라는 표현이 널리 쓰일수록 빈소 없는 장례는 '기본에서 하나가 빠진 형태'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이것이 특정 주체의 의도적인 전략이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빈소 없는 장례를 결핍의 언어로 설명하는 효과를 낳고 있으며, 소비자의 심리에 영향을 줄 가능성은 충분히 생각해 볼 만하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무빈소 장례'라는 용어 자체를 다시 돌아보는 일이다. 이 표현은 단순히 빈소의 유무를 설명하는 말인지, 아니면 장례의 가치를 은연중에 서열화하는 언어인지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이름부터 되찾자
빈소가 필요 없는 가족이 가족장을 선택하는 것은 부족한 장례가 아니다. 가족의 규모와 고인의 뜻에 맞는 장례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문객이 많다면 빈소를 마련하면 된다. 반대로 조문객을 받을 계획이 없다면 가족끼리 조용히 가족장을 치르면 된다. 어느 쪽도 더 우월하거나 부족한 장례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필요한 것을 선택하는 일이지, 이름이 만들어내는 죄책감에 선택을 맡기는 것이 아니다.
장례는 이름이 아니라 가족의 뜻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같은 장례를 더 이상 '결핍의 언어'로 부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