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안치실에서 그는 석 달을 기다렸다

공영장례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대개 장례식이 '치러졌는지 아닌지'만 본다. 그런데 그 앞 단계, 즉 시신이 어디에서 얼마나 오래 머무는지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다.
연고자가 없거나 연고자가 인수를 거부한 시신은 곧바로 땅에 묻히거나 화장되지 않는다. 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일정 기간 공고를 내고, 혹시 나타날지 모를 가족을 찾거나 지자체의 행정적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 문제는 이 기간 동안 시신이 머무를 곳이다. 현재 한국에는 장기 보관을 전제로 설계된 전문 공공안치시설이 없다. 시신이 머물 수 있는 곳은 장례식장 안치실(병원 부속인 경우 흔히 '영안실'로 불린다)과 화장장 내 화장대기용 안치실, 이렇게 두 곳뿐인데 어느 하나도 몇 달 단위의 장기 체류를 염두에 두고 만들어지지 않았다.
장례식장 안치실은 3일장 안팎의 짧은 체류를, 화장장 안치실은 순서를 기다리는 몇 시간에서 하루 남짓을 전제로 설계된 공간이다. 게다가 한국은 엠버밍(방부 처리)을 하지 않는 장례 문화이다 보니, 온도를 아무리 낮춰도 시신이 버틸 수 있는 시간에는 한계가 있다. 절차가 열흘이면 끝나는 곳도 있지만, 안치 공간과 담당 인력 부족, 행정 병목으로 인해 몇 달씩 이어지는 곳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시신은 애초에 그렇게 오래 있을 것을 상정하지 않은 시설에, 그것도 오래 버티기 힘든 방식으로 놓여 있다는 점은 같다. 절차가 며칠이 걸리든 몇 달이 걸리든, 그 시간을 버텨낼 시설 자체가 없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도로가 없으면 길이 막히고 상수도가 없으면 물을 못 쓰듯, 장기 보관용 안치 인프라 자체가 없으면 단기용 시설이 그 부담을 억지로 떠안는다. 이는 개별 병원이나 장례식장의 운영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갖춰야 할 필수 기반시설이 애초에 만들어진 적이 없다는 신호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 부재를 도로 부족이나 단수 사태만큼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눈에 잘 띄지 않고, 겪는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소방서나 상수도처럼, 없으면 사회 전체가 멈추는 시설
우리는 사회기반시설(SOC)이라고 하면 도로, 철도, 상하수도, 전력망을 떠올린다. 이런 시설의 공통점은 평소에는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다. 물이 잘 나오고 도로가 잘 뚫려 있을 때는 아무도 그 가치를 의식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것이 부족해지거나 아예 없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전문 공공안치시설의 부재도 정확히 같은 성격을 갖는다. 매일 쓰는 도로나 상수도와 달리 일생에 자주 접하는 곳은 아니지만, 소방서나 응급실처럼 '부재 시 사회적 마비와 존엄의 통제 불능을 초래하는 위기 대응형 사회기반시설'이다. 누군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시신을 장기 보관에 적합한 환경에서 존엄하게 관리하며 다음 절차로 넘겨줄 공간이 사회 어딘가에 표준화된 체계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는 상수도나 전력망과 다르지 않은 필수 인프라다.
다만 도로나 상수도가 없으면 곧바로 민원이 빗발치는 반면, 전문 안치시설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는 정작 그 피해를 겪는 당사자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이거나 목소리를 낼 처지가 못 되는 유가족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단순히 '복지 예산 배분'의 문제가 아니라 '필수 기반시설 신설'의 문제로 정의되어야 한다. 병원이 치료까지만 담당하고 그 이후는 재활병원이나 요양병원으로 역할이 나뉘듯, 출산이 산부인과와 산후조리원으로 공간과 기능이 분리되어 왔듯, 죽음 이후의 과정도 목적에 맞게 공간이 나뉘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영역만 수십 년째 장례식장(병원 부속 영안실 포함)과 화장장이라는 두 개의 단기용 공간에 모든 부담을 떠넘긴 채 멈춰 있다.
맞는 시설에서 기다리게 하는 일
우리는 흔히 존엄한 죽음을 '좋은 장례식'과 동일시한다. 하지만 정작 누군가에게는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 화려한 빈소가 아니라, 단기 체류용으로 지어진 병원 영안실이나 안치실 한 칸일 때가 많다. 그 시간 동안 고인이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리고, 원래 며칠이면 끝날 절차가 계속 미뤄진다면, 장례식 당일의 몇 시간짜리 예우만으로는 그 공백을 메울 수 없다.
전문 공공안치시설이 해야 할 역할은 단순히 시신을 냉장 '보관'하는 데 있지 않다.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고인이 그 목적에 맞게 설계된 환경에서 관리되도록 하고, 하루라도 빨리 다음 단계로 이어지게 만드는 최소한의 안전망이어야 한다. 이런 시설의 존재 여부, 그리고 그곳을 관리하는 전문 인력의 규모는 결국 우리 사회가 한 인간의 마지막 대기 시간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다.
공영장례와 전문 안치센터, 두 축이 만나야 할 지점
공영장례가 마지막을 배웅하는 의식이라면, 전문 공공안치시설은 그 배웅이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적합한 환경에서 지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이 둘은 따로 떨어진 별개의 제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주는 하나의 연속된 흐름이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에서 공영장례는 병원 영안실과 민간 장례시설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지역마다 서비스 수준과 운영 방식에 차이가 난다. 전문 안치시설이라는 공통의 기반이 없다 보니, 어떤 지역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병원이나 장례식장을 활용해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어떤 지역은 그마저도 여의치 않아 대기 기간이 한없이 늘어진다.
이것을 '지역 간 복지 격차'라고만 부르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게 된다. 상수도망 자체가 없는 사회를 우리는 '복지 격차'라 부르지 않고 '인프라 부재'라 부른다. 안치 인프라도 마찬가지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존 시설을 지역별로 고르게 나누는 일이 아니라,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시설을 새로 만드는 일이다.
살아 있는 우리 모두를 위한 안전망
공공안치시설을 이야기하면 흔히 "산 사람도 힘든데 죽은 사람 시설에 예산을 쓰냐"는 반론이 나온다. 하지만 이 시설은 죽은 사람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언젠가 이 사회의 누군가가 놓일 수 있는 마지막 자리이며, 동시에 우리가 서로를 어떤 수준으로 대우하는 공동체인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한 사회의 품격은 가장 약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순간의 사람을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드러난다. 이미 세상을 떠나 스스로를 변호할 수 없는 이들을 사회가 어떻게 관리하고 배웅하는지는, 결국 살아 있는 우리 모두의 삶의 안전망과 직결되는 질문이다. 전문 공공안치시설 신설과 공영장례 정착은 그래서 별개의 사업이 아니라, 한 사람의 존엄을 시작부터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사회적 약속을 완성하는 두 개의 축이다.
없는 시설을, 이제는 만들어야 한다
무연고 사망이 늘어나는 사회가 고립이 깊어진 사회라면, 정작 그 마지막을 맡길 전문 시설조차 없는 사회는 그 고립을 방치 수준으로 외면하는 사회다. 전문 공공 안치 인프라를 신설하고 전담 행정 인력을 배치하는 일은 시혜적 예산 집행이 아니라, 국가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필수 사회기반시설을 처음으로 세우는 일이다.
공영장례가 한 사람을 배웅하는 마지막 의식이라면, 전문 공공안치시설은 그 사람이 적합한 환경에서 다음 절차를 기다릴 수 있도록 지키는 공간이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시설은 지자체의 형편에 따라 있다가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국 어디서나 차별 없이 표준화된 서비스가 제공되는 '공공 인프라'로 처음부터 설계되어야 한다.
도로와 상하수도가 전국 어디서나 일정 수준으로 작동하는 것을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듯, 전문 안치 인프라 역시 존엄을 지키기 위한 사회의 기본 장치로 새롭게 세워져야 한다. 이 인프라가 갖춰질 때, 비로소 우리는 '누구도 홀로 방치되어 잊히지 않는 사회'로 한 걸음 나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