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번째 여행

멀리 두고 온 집의 안부

다비코 2026. 10. 18. 11:45


부모님이 떠난 고향집을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들

명절이 아니면 열어 보지 못하는 대문이 있다. 열쇠를 돌리면 먼지 냄새가 먼저 마중 나오고, 마당에는 지난여름의 풀이 무릎까지 자라 있다. 그 집에서 밥을 먹고 숙제를 하던 사람들은 이제 대부분 도시에 산다. 집은 비었지만 마음까지 빈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이 낯익은 풍경 앞에서 비어 있는 집의 안부를 대신 물어 주는 서비스가 10년 넘게 이어져 왔다. 일본 빈집 관리 네트워크 ‘日本空き家サポート’(니혼 아키야 서포트) 이야기다.

집은 누군가의 부재 뒤에 비기 시작한다

일본 총무성 조사에 따르면 2023년 10월 기준 일본의 빈집은 약 900만 호, 전체 주택의 13.8%다. 임대·매각용과 별장을 뺀 ‘쓰이지 않는 빈집’만 385만 호에 이른다. 통계국은 혼자 사는 고령자가 숨지거나 시설로 옮긴 뒤 집이 비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숫자 뒤에는 대개 사연이 있다. 입원, 요양시설 입소, 사별, 먼 도시로의 이사. 집은 사람이 떠난 날이 아니라, 남은 사람이 이 집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결정을 미루는 날부터 조용히 비어 간다.

‘언젠가’를 지켜 두는 일

日本空き家サポート는 2015년 7월 1일 시작됐다. 운영사는 치바현의 L&F이고, 집을 찾아가는 사람은 각 지역의 부동산·주택 관련 업체다. 공식 사이트가 먼저 강조하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이유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은 빠르게 낡는다. 언젠가 내가 들어가 살지도 모르는 집, 언젠가는 팔게 될 집의 선택지를 남겨 두려면 정기적으로 돌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날 하는 일은 소박하다. 우편함을 비우고, 모든 방의 창을 열어 환기하고, 수도에 물을 흘려보내고, 가볍게 청소하고, 마당의 나무와 문단속을 살핀다. 기본은 한 달에 한 번이다. 작업이 끝나면 사진과 동영상이 담긴 보고서가 올라오고, 소유자는 멀리서 휴대폰으로 그 집을 본다. 태풍이나 하천 범람 같은 재해 뒤에는 무료 긴급 점검도 나간다.

선을 긋는 일도 있다. 귀중품은 미리 가져가야 하고, 집 안의 화분이나 동식물을 돌보는 일은 하지 않는다. 집은 돌봐도, 집 안에 남겨진 살아 있는 것들은 맡길 수 없다.

사정은 저마다 다르다

공식 사이트에 실린 이용 사례의 제목만 읽어도 사연은 제각각이다. 부모가 함께 입원해 고치시의 본가가 빈집이 된 도쿄 거주자. 부부가 딸의 집 근처로 이사하면서 다카마쓰시의 집을 비운 효고현 거주자. 어머니는 시설에 들어가고 본인은 해외 근무를 하게 돼 오노미치시의 집을 두고 브라질에 사는 사람. 사연은 달라도 바라는 것은 비슷했을 것이다. 열어 보지 못하는 집을 대신 열어 줄 사람이다.

운영사는 빈집 문제를 남의 일이 아닌 내 일로 느끼게 하려고 ‘빈집 센류(川柳)’ 공모전도 연다. 센류는 17음절의 짧은 풍자시다. 1회에는 6,151구가 모였다. 운영사는 응모작에 본가에 대한 그리움, 상속에 대한 불안, 마을에 대한 애착, 관리의 고민이 담겨 있었다고 전했다. 올해 2회 공모전의 결과도 발표됐다.

대표는 인사말에서 빈집을 인구 감소와 지방 쇠퇴의 상징이라 부르며, 정든 고향의 집이 오늘도 어딘가에서 빈집이 되고 있다고 썼다.

우리의 고향집은 안녕한가

한국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데이터처의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2026년 7월 28일 발표)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주택은 172만 2천 호로 역대 최대, 전체 주택의 8.5%였다. 전남 15.2%, 제주 14.6%, 강원 13.4%, 경북 13.2%. 서울은 3.9%다. 서울의 3.9%와 전남의 15.2% 사이에는 명절마다 되풀이되는 귀성길이 놓여 있는 셈이다.

다만 이 숫자에는 새로 짓거나 이사 중인 집처럼 일시적으로 빈 집도 들어 있다. 법이 말하는 ‘1년 이상 방치된 빈집’은 2024년 지자체 조사로 13만 4천 호이고, 그중 절반가량인 6만 6천여 호가 농촌에 있다.

올해 한국도 법으로 답을 내놓기 시작했다. 5월 7일 국회를 통과한 ‘농어촌 빈집 정비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소유자가 안전사고를 막기 위해 빈집을 관리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8월 20일에는 도시 빈집까지 아우르는 ‘빈 건축물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했다. 위험한 빈집에는 지자체가 안전조치나 철거를 명령하고, 따르지 않으면 이행강제금을 물릴 수 있다. 이 법에는 소유자를 대신해 빈집을 관리하는 ‘빈 건축물 관리업’ 등록제도 들어 있다.

법은 이것을 관리 책임이라 부른다. 그러나 멀리 사는 소유자에게 그것은 책임이기 전에 미안함에 가까울 때가 많다. 허물자니 정든 집이고, 두자니 흉해지는 집. 철거하면 세금 부담이 늘어난다는 점도 방치의 대표적 요인으로 꼽혀 왔다. 지난해 12월에는 빈집을 철거하고 새로 지을 때 취득세와 재산세를 감면하는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집을 지킨다는 것

일본 사례에서 오래 남는 것은 서비스의 기술보다 태도다. 관리는 이별을 미루는 일이 아니라, 결정할 시간을 벌어 주는 일이다. 집이 무너지지 않고 버텨 주어야 남은 사람들은 팔지, 고쳐 쓸지, 헐지를 서두르지 않고 고를 수 있다.

한국에서도 빈집을 대신 돌보는 일이 법의 이름을 얻기 시작했다. 명절에 고향집 대문을 열어 본 사람이라면 일본에서 던져진 질문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비어 있는 집은 누가 열어 보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집의 안부를 언제까지 명절에만 물을 것인가.

 


※ 참고 사이트
- 日本空き家サポート 공식 사이트(서비스 개요·이용 사례): https://xn--w8jvl3b6d9gz83xm5o0mc223e.jp/portal/
- 한국경제, 2025년 인구주택총조사(2026.7.28): https://www.hankyung.com/article/202607280101i
- 뉴시스, 농어촌 빈집 특별법 통과(2026.5.7): https://m.news.nate.com/view/20260507n32419
- 뉴스경남, 철거 후 신축 시 취득세·재산세 감면: https://www.newsgn.com/news/articleView.html?idxno=569143
- 노컷뉴스, 빈집 방치 요인과 세제 지원: https://www.nocutnews.co.kr/news/63333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