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노트

먹지 않고 마시지 않을 권리(VSED)

다비코 2026. 9. 20. 14:34

 

VSED를 둘러싼 국제 비교... 미국·네덜란드·영국은 인정하고, 한국은 아직 답하지 않은 질문

사람은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의료행위를 거부할 수 있다.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겠다고 할 수도, 투석을 멈추겠다고 할 수도, 항암치료를 그만두겠다고 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음식과 물은 어떨까. 이 질문 앞에서 각국의 법과 의료윤리는 조금씩 다른 답을 내놓고 있다.

의료계는 이를 VSED(Voluntary Stopping of Eating and Drinking), 즉 '자발적 음식·수분 섭취 중단'이라 부른다.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사람이 스스로 음식과 물의 섭취를 중단해 죽음을 앞당기는 선택이다.

VSED는 안락사나 의사조력사망과는 결이 다르다. 의사가 치명적인 약물을 투여하거나 처방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자신이 음식과 수분을 거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의료진의 역할도 죽음을 일으키는 데 있지 않다.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통증과 불편을 줄이고,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데 있다.

미국에서는 2023년 발표된 임상지침이 VSED를 "모든 주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선택"으로 규정했다. 이 지침은 중대한 질환으로 삶의 질이 크게 떨어진 환자가 선택할 수 있는 임종 방법으로 VSED를 설명하며, 의료진에게 환자의 의사결정능력과 자발성을 확인하고 적절한 완화의료를 제공할 것을 요구한다. 다만 이는 미국 50개 주에 'VSED법'이 개별적으로 존재한다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의 법적 근거는 환자가 자신의 신체에 대한 의료행위를 거부할 권리, 즉 치료거부권에서 나온다.

 


안락사의 대체물이 아니다

VSED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 조력사망과 구분해야 한다.

조력사망은 국가가 정한 요건을 충족한 사람에게 의사의 처방이나 의료적 조치를 통해 죽음에 이르는 수단을 제공하는 제도다. VSED는 다르다. 환자가 스스로 음식과 물을 거부하는 것이며, 따라서 조력사망이 허용되지 않는 나라에서도 존재할 수 있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영국은 조력사망을 별도 제도로 허용하지 않지만, 영국의사협회(BMA)는 지난 8월 24일 VSED 환자를 돌보는 방법에 관한 지침을 새로 개정했다. BMA는 VSED를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사람이 강요나 통제 없이,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음식과 수분 섭취를 중단해 생명을 끝내려는 선택"으로 정의하며, 의료진이 이를 법과 윤리의 틀 안에서 지원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한다.

즉 영국의 사례가 보여주는 사실은 분명하다. '조력사망을 허용하는가'와 '환자가 음식과 물을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는가'는 서로 다른 법적 문제라는 것이다.

네덜란드, VSED를 의료현장의 공식 논의로 끌어들이다

VSED가 가장 체계적으로 다뤄지는 나라는 네덜란드다. 네덜란드 의사협회(KNMG)는 2024년 1월 '의식적으로 음식과 음료를 중단해 임종을 앞당기는 사람을 위한 의료지침'을 10년 만에 개정했다.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VSED를 선택할 수 있으며, 의료진은 이를 전제로 환자와 임종 과정을 논의하고 준비와 완화의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골자다.

특히 눈에 띄는 변화는 두 가지다. 하나는 VSED를 사전 돌봄계획의 일부로 논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의료진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먼저 VSED를 설명할 수도 있다. 다른 하나는 기존에 있던 '60세 미만에게는 권장하지 않는다'는 연령 제한을 삭제한 것이다. 60세 미만이 VSED를 선택한 사례가 늘면서 나온 조치다.

네덜란드 의료계는 VSED를 적극적 안락사와 동일하게 취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더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다. 바로 '치매'다.

치매 환자에게 VSED를 적용할 수 있는가

치매로 의사결정능력을 잃은 사람에게 과거 한 장의 문서만으로 음식과 물을 끊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 때문에 2024년 개정 지침은 의사결정능력을 상실한 치매 환자에 대한 챕터를 전면 재작성했다. 이 경우에는 현재 환자의 행동과 상태가 판단의 중심이 되고, 과거의 서면·구두 의사표시는 제한적인 역할만 한다고 명시한다.

따라서 '치매에 걸리면 미리 써둔 VSED 의향서대로 음식과 물을 끊는다'는 식의 통념은 정확하지 않다.

국가마다 사전의사표시의 효력도 다르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성인이 향후 특정 조건이 발생했을 때 음식과 물을 제공받지 않겠다는 내용을 담은 VSED 사전지시서를 작성할 수 있다. 반면 캐나다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성인의 음식·수분 거부는 전국적으로 인정되지만, 사전지시서를 통한 이후의 거부까지 인정할지는 주·준주에 따라 법적 확실성이 다르다. 


결국 VSED의 핵심 질문은 '죽고 싶다는 뜻을 미리 적어두었는가'가 아니라 그 의사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지금의 환자 상태에 적용될 수 있는가다.

사망까지 걸리는 시간, 정해진 답은 없다

VSED를 선택했다고 정해진 날짜에 사망하는 것은 아니다. 건강상태, 수분 섭취 여부, 기저질환, 신장기능, 연령에 따라 경과가 크게 달라진다. 따라서 특정 기간을 절대적 기준으로 제시하는 설명은 부정확하다.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으로는 갈증과 구강건조, 피로와 쇠약, 소변량 감소, 졸림, 혼란이나 섬망 등이 보고된다. VSED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 자연스럽게 잠들 듯 죽는다'고 요약할 수 있는 단순한 과정이 아니다. 그래서 의료진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의사는 죽음을 돕는가, 고통을 줄이는가

환자가 음식과 물을 끊으면 의료진은 갈증, 통증, 불안, 섬망 등을 관리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환자를 죽게 만드는 행위와는 구별된다. 네덜란드 KNMG는 의료진의 목표가 죽음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의 고통과 합병증을 완화하는 데 있다고 명시한다.

호주에서도 비슷한 원칙이 적용되지만, 법적 확실성은 더 낮다. 호주의 법·임종 연구기관 QUT는 의사결정능력이 있는 사람이 음식과 물을 거부하는 것 자체는 합법이라고 설명하면서도, VSED의 구체적인 법적 지위와 의료진의 증상완화 책임에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VSED를 '의사가 죽음을 도와주는 행위'로 단순화하는 것도, 반대로 '아무 의료적 지원이 필요 없는 개인의 선택'으로 보는 것도 모두 정확하지 않다.

국가별 비교


뉴질랜드, 법률에 새겨놓은 권리

뉴질랜드의 「End of Life Choice Act 2019」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법은 조력사망 제도를 규정하면서도, 별도 조항에서 이 법이 개인의 기존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그 권리에는 영양 공급을 거부할 권리, 수분 공급을 거부할 권리, 생명유지 의료를 거부할 권리가 포함되며, 의료인은 통상적인 의료행위에 따라 고통을 완화할 의무를 진다. 

여기엔 중요한 법적 철학이 담겨 있다. 조력사망을 허용하는 것과, 환자가 자신의 몸에 제공되는 음식·수분·의료를 거부할 권리는 별개의 문제라는 것.

한국은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의 상황은 이들 국가와 상당히 다르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임종과정에서 연명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한다. 그러나 여기엔 중요한 제한이 있다.

현행법 제19조 제2항은 연명의료중단등결정을 이행하더라도 영양분 공급, 물 공급, 산소의 단순 공급은 시행하지 않거나 중단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즉 한국의 환자는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에 관해서는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그것이 곧 VSED와 같은 자발적 음식·수분 섭취 중단을 법적으로 보장한다는 뜻은 아니다.

이 차이는 결코 작지 않다. 미국은 VSED를 치료거부권의 연장선에서 모든 주에서 법적으로 가능한 선택으로 설명하고, 네덜란드는 의사협회가 이를 사전 돌봄계획과 완화의료의 영역에서 다룬다. 영국 역시 조력사망을 허용하지 않으면서도 VSED 환자를 위한 지침을 갖고 있다. 반면 한국의 연명의료결정법은 영양과 수분 공급을 연명의료중단 결정의 대상에서 사실상 제외하고 있다. 참고로 이 조항의 위헌 여부를 다투는 헌법소원이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VSED가 던지는 질문

VSED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안락사를 허용할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로 환원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어디까지 결정할 수 있는가.

치료를 거부할 권리는 인정하면서 음식과 물을 거부할 권리는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가.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는 것은 자기결정권인데, 음식과 물을 스스로 거부하는 것은 왜 다르게 취급되는가. 그리고 환자가 의사결정능력을 잃었을 때, 과거에 남긴 의사는 지금의 그 사람을 어디까지 구속할 수 있는가.

치매 환자의 사전의사표시 문제는 이 질문을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살아 있을 때 "이런 상태라면 먹고 마시고 싶지 않다"고 적어두었다면, 의사결정능력을 잃은 그 사람에게 의료진과 가족은 그 뜻을 그대로 따라야 하는가. 네덜란드는 현재 환자의 행동과 상태를 중요하게 보고, 미국 일부 주는 구체적인 사전지시서 제도를 발전시키고 있으며, 캐나다는 지역에 따라 사전의사표시의 법적 범위가 다르다. 국가마다 답이 다르다는 사실 자체가, 이 질문에 쉬운 답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죽음을 선택할 권리'보다 먼저 살펴봐야 할 것

VSED를 둘러싼 국제적 논의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환자가 VSED를 선택했다고 해서 의료진이 손을 놓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반대다. 의사결정능력을 확인하고, 선택의 이유를 살피고, 환자가 충분한 정보를 바탕으로 결정했는지 점검하고, 가족과 돌봄계획을 논의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증상을 관리하고 완화의료를 제공한다.

결국 VSED가 보여주는 것은 '죽을 권리' 하나가 아니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더 구체적인 자기결정과 돌봄의 설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한국에서 엔딩노트가 장례식장이나 장지의 위치를 적어두는 문서에 머물러서는 안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치료를 받을 것인지, 무엇을 거부할 것인지, 의사결정능력을 잃었을 때 누가 나의 의사를 전달할 것인지, 임종 과정에서 어떤 돌봄을 원하는지... 이런 것들이 미리 기록되고 실제 의료현장에 전달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에 관한 자기결정권은 장례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생기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앞선, 임종의 순간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현재 한국의 제도는 그 자기결정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아직 분명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