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회귀

[죽음의 길을 다시 설계하다 ②]매장을 없애는 대신 '다시 쓰는 땅'으로

다비코 2026. 10. 1. 10:45

영구 점유형 분묘에서 순환형 묘역으로… 문제는 '매장'이 아니라 '낡은 시스템'이었다

한국에서 매장은 두 문장 사이에 놓여 있다. "묘지가 국토를 잠식한다"와 "매장은 이제 시대에 맞지 않는다"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이 말들이 겨냥한 것은 매장이라는 장법이 아니라, 무덤 한 기가 땅 한 자리를 영구히 차지하던 방식이었다. 화장시설 병목을 다룬 [1편]에 이어, 이번에는 매장을 없애지 않고 고쳐 쓰는 길을 짚어본다.

봉분이 산자락에 흩어진 전통 분묘


문제는 '한 기당 영구 점유'였다

산과 들에 흩어진 개별 분묘는 오랜 시간 토지를 차지했고, 봉분과 석물은 관리에 손이 많이 갔다. 후손이 멀리서 벌초하러 내려와야 하는 부담도 컸다. 하지만 국토를 잠식한 것은 매장 행위 자체가 아니라, 매장을 개별적이고 영구적인 점유로 운영해온 시스템이었다.

땅 한 구획을 영원히 쓰는 방식과, 일정 기간 쓰고 같은 공간을 다시 쓰는 방식은 다르다. 산자락에 가족묘가 흩어진 구조와, 여러 분묘를 하나의 공공 묘역으로 모아 관리하는 구조도 다르다. 필요한 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일이 아니라 매장을 다르게 설계하는 일이다.

이미 있는 '기한 있는 매장'

현행 장사법은 분묘를 영구 시설로 보지 않는다. 공설묘지와 사설묘지의 분묘 설치기간은 30년이고, 연고자가 신청하면 1회에 한해 30년을 연장할 수 있다. 최장 60년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묘지 수급을 위해 필요하면 조례로 연장 기간을 5년 이상 30년 미만으로 줄일 수 있다.

그런데 기간이 끝난 뒤의 처리가 문제다. 연고자는 설치기간이 끝난 날부터 1년 이내에 시설물을 철거하고 매장된 유골을 화장하거나 봉안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1년 이하 징역이나 1천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연고자가 이행하지 않으면 묘지 설치자가 시설물을 철거하고 유골을 화장해 일정 기간 봉안할 수 있다. 이때 설치자는 미리 기간을 정해 연고자에게 알려야 하고, 연고자를 알 수 없으면 공고해야 한다.

즉 통지와 공고 절차는 있다. 다만 절차의 종착점이 '화장 후 봉안'이다.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묻힌 유골을 꺼내 화장하고 봉안하면, 고인과 유족이 택한 매장이라는 방식은 결국 바뀐다. 반면 기존 유해를 같은 자리에 더 깊이 모시고 남은 공간을 새 매장에 쓰면, 매장이라는 방식은 지키면서 한정된 땅을 여러 세대가 나눠 쓸 수 있다. 유족이 받아들이는 의미도, 필요한 법적 절차도 다르다. 종교나 신념 때문에 화장을 원하지 않는 사람에게 현행 제도는 60년 뒤에 사실상 화장을 강제하는 구조인 셈이다.

묘 한 기에서 묘역 전체로

장사법은 공설묘지·가족묘지·종중묘지·법인묘지의 분묘 1기와 상석·비석 등 시설물 구역을 10㎡(합장은 15㎡), 개인묘지는 30㎡ 이내로 제한한다. 그러나 분묘마다 상한이 있다고 해서 묘역 전체가 효율적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분묘가 각기 다른 시기에 조성되고 진입로와 배수시설, 관리 공간이 따로 만들어지면 토지 이용은 여전히 분산된다.

그래서 묘역 전체를 하나의 단위로 봐야 한다. 진입로와 관리시설을 공동으로 쓰고, 분묘 사이의 불필요한 공백을 줄이고, 봉분 대신 평장과 녹지를 중심에 두는 방식이다. 큰 비석과 상석 대신 묘역 입구에 고인 정보를 기록하고, 개별 위치는 디지털 묘적부로 관리해 유족이 온라인 지도나 현장 안내로 확인하게 할 수 있다. 기억을 없애자는 뜻이 아니다. 기억의 방식을 개인 소유의 석물에서 공공 기록의 체계로 옮기자는 것이다.

영국 '리프트 앤 딥'이 보여주는 것

묘지를 한 번 쓰고 끝나는 곳이 아니라 다시 쓸 수 있는 공간으로 보는 사례는 영국 런던에 있다. 영국 의회 도서관 보고서는 '리프트 앤 딥(Lift and Deepen)'을 기존 유해를 조심스럽게 수습하고 묘혈을 더 깊게 판 뒤 유해를 같은 무덤에 다시 안치하고, 남은 공간에 새 매장을 하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근거는 2007년 런던지방자치법(London Local Authorities Act 2007) 74조다. 런던의 매장 당국은 개인이 매장권을 사서 쓰던 묘 가운데 매장 뒤 75년이 지난 유해에 한해, 매장권을 소멸시킨 뒤 유해를 옮겨 묘혈을 깊게 할 수 있다. 75년이 지나지 않은 유해는 대상이 될 수 없고, 옮긴 유해는 반드시 그 무덤에 다시 안치해야 한다. 이는 전용 묘지 제도가 아니라 이미 영구 매장권으로 팔린 묘의 공간을 되찾아 쓰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기한제와 출발점이 다르다.

절차도 엄격하다. 당국은 사전에 공고하고 통지해야 하고, 등록된 권리자나 고인의 친족이 이의를 제기하면 첫 공고일로부터 25년 동안 해당 권한을 행사할 수 없다. 종교적으로 봉헌된 땅이라면 교구 법원의 허가(faculty)가 따로 필요하다. 런던 시티 오브 런던 공동묘지처럼 유해를 한 구역의 지정 무덤에 모아 재안치하고 원래 무덤을 새 가족에게 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이 제도의 핵심은 공법이 아니라 절차의 안전장치다. 재사용을 허용하되 시간·통지·이의제기·재안치·감독을 함께 둔다. 영국 의회 도서관은 재사용을 화장을 원하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로 매장이 필요한 사람의 선택지를 지키는 수단으로 다룬다. 물론 영국 제도를 한국에 그대로 옮길 수는 없다. 매장권과 종교 부지, 묘지 운영 구조가 다르고, 75년이라는 숫자도 한국의 최장 60년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그럼에도 질문은 남는다. 기간이 끝난 묘의 유해를 반드시 화장·봉안해야만 고인의 존엄이 지켜지는가.

묘지 재사용, 공공이 책임지는 절차로

재사용을 말하면 가장 먼저 유족의 감정과 고인의 존엄이 걸린다. 후손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자체가 임의로 무덤을 정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도 분명하다. 그래서 재사용형 묘역은 토지 확보 논리만으로는 안 된다. 아래는 이 시리즈가 제안하는 설계 방향이다.

  1. 기록 정비: 누가 언제 묻혔는지, 연고자는 누구인지, 설치기간은 언제 끝나는지, 토지 권리는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2. 다단계 통지: 설치기간 종료 예정 사실을 연고자에게 여러 차례 알리고, 연장·이장·재안치 가운데 선택할 수 있게 한다. '연고자 없음'은 '찾아올 사람이 없음'과 같은 말이 아니므로, 전화나 우편 한 번으로 끝내지 않고 공고·현장 게시·전자기록·행정정보 연계를 함께 활용한다.
  3. 이의제기 보장: 연고자나 친족이 이의를 제기하면 재사용 절차를 멈추고 협의한다. 영국 런던도 이의가 접수되면 첫 공고일로부터 25년 동안 해당 권한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다.
  4. 예우를 갖춘 수습과 재안치: 유해와 유품을 확인해 수습하고, 더 깊은 층에 다시 안치하거나 공동 추모 공간에 모신다. 과정은 기록하고 유족이 원하면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집단화와 '공원형 묘역'

새로운 매장 모델은 가족이 각자 땅에 만드는 묘가 아니라, 묘역을 공동으로 설계하고 운영하는 공공시설이어야 한다. 토지 이용계획, 배수와 토양, 접근성, 추모 공간, 관리 인력, 장기 운영비를 함께 짜야 한다. 중요한 것은 많이 넣는 것이 아니다. 과밀 매장은 새로운 공동묘지에 그칠 뿐이다. 유족이 고인을 찾아갈 수 있고, 위치와 기록을 오래 확인할 수 있고, 관리 주체가 분명하고, 다음 사용을 위한 정비가 가능해야 한다. 공원처럼 꾸민 묘역도 수목 관리와 재해·토양 침식 대응 비용이 든다. 조성비뿐 아니라 수십 년 뒤 유지관리비까지 계산해야 한다.

정부 계획도 방향은 비슷하다. 보건복지부의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은 화장시설 확충과 함께 자연장지·봉안시설 확대, 노후 시설 현대화, 복합 문화공간 전환을 내걸었다. 사망자가 2020년 31만 명에서 2070년 70만 명으로 늘 것이라는 전망도 근거로 든다. 다만 지속가능성을 자연장·산분에만 한정할 이유는 없다. 화장 유골을 자연에 안치하는 방식이 모든 사람의 선택은 아니다. 화장시설 병목을 줄이기 위해서도 화장하지 않는 경로는 남겨야 한다. 한 묘역 안에서 직접 매장·순환형 구역과 자연장지, 봉안·산분·공동 추모시설을 함께 운영하는 설계가 가능하다.

순환의 조건, 기간보다 신뢰

몇 년으로 정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기간이 끝났을 때 유족이 어떤 대우를 받을지 믿을 수 있느냐다. 안식기간이 너무 짧으면 매장이 불안정한 장법으로 느껴지고, 지나치게 길고 관리가 불투명하면 토지 순환이 다시 막힌다. 기본 기간과 연장 기간을 나누고 연장 횟수와 상한을 분명히 하되, 장기 보존형 묘역과 순환형 묘역을 구분하는 방법이 있다. 연고자 없는 분묘는 공고와 이의제기 기간을 거쳐 공동 추모 공간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 재사용 뒤에도 고인의 이전 위치와 현재 위치가 디지털 지도에 남아야 한다. 비석을 없앤다고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기록이 사라지면 작은 표식이 남아도 기억은 이어지기 어렵다.

매장, 없앨 과거가 아닌 고칠 인프라

화장 중심 사회에서 매장은 소수의 예외처럼 취급됐다. 그러나 선택지가 실제로 작동하려면 소수의 선택에도 최소한의 공공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집단화되고, 봉분과 석물이 최소화되고, 일정 기간 뒤 재사용할 수 있고, 공공이 관리하는 매장은 화장의 경쟁자가 아니다. 화장 예약이 몰릴 때 모든 장례가 동시에 지연되지 않게 하는 안전판이 될 수 있다.

영구히 땅을 차지하는 분묘의 시대는 끝나야 한다. 그러나 매장이라는 장법까지 사라질 필요는 없다. 한 번 쓴 공간을 다시 쓰는 것, 그것이 지속가능한 묘역의 핵심이다. 다음 편에서는 화장하지 않는 사람을 위한 '진짜 자연매장'을 다룬다.



※ 참고자료: 장사 등에 관한 법률 제19·20조, 법제처 생활법령정보(사설묘지 분묘 설치기간), 한국장례문화진흥원(묘지와 분묘), UK House of Commons Library 「Reuse of graves」, London Local Authorities Act 2007 s.74, 노한장 「토지의 효율적 이용을 위한 분묘관리 개선방안 연구」(2019), 보건복지부 「제3차 장사시설 수급 종합계획(2023~20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