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났다"

왜 옛날 사람들은 "동티났다"고 말했을까
경상도에서 전해오는 변강쇠 이야기가 있다. 아내가 땔감을 구해오라고 성화를 부리자, 변강쇠는 마을 어귀에 서 있던 장승을 베어다 땠다.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신이 깃든 나무다. 얼마 뒤 변강쇠는 온몸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는 병에 걸려 죽는다. 사람들은 이걸 "동티가 났다"고 불렀다. 건드리면 안 되는 걸 건드려서 벌을 받았다는 뜻이다.
동티가 뭐길래
동티는 아주 간단한 규칙이다. 신이 깃든 것, 죽은 사람과 관련된 것, 오래도록 손대지 않고 두었던 것을 함부로 건드리면 화를 입는다는 것이다. 땅을 잘못 파도, 오래된 돌을 옮겨도, 무덤을 잘못 건드려도 동티가 난다고 했다. 벌은 대개 갑자기 아프거나, 하는 일이 안 풀리거나, 심하면 목숨을 잃는 식으로 나타난다고 여겨졌다.
이 말이 지금도 살아 있다는 걸 보여주는 재밌는 증거가 있다. 2024년에 개봉한 영화 '파묘'가 크게 흥행했는데, 이 영화의 핵심 소재가 바로 잘못 건드린 무덤 때문에 벌어지는 재앙이다. 실제로 영화를 보고 나서 "동티가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을 정도로, 오래된 이 말이 요즘 사람들에게도 여전히 낯설지 않게 다가왔다.

2024년 개봉해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 '파묘'는 여섯 개의 장으로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중 네 번째 장의 제목이 아예 '동티(動土)'다. 오래된 민간신앙 하나가 영화의 한 챕터 전체를 차지할 만큼 비중 있게 다뤄진 셈이다.
발단은 전화 한 통이다. 묘 이장 작업에 동원됐던 인부 창민이 상덕에게 전화를 걸어 "동티난 거 같아요"라고 털어놓는다. 작업 중 이상하게 생긴 뱀을 봤다는 것이다. 통화가 이어지는 사이 창민의 한쪽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기 시작하고, 그는 자신이 반으로 잘라놓은 그 뱀을 찾아 제사를 지내달라고 부탁한다.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렸고, 그 대가로 몸에 이상이 나타난다는 전개. 조선 시대부터 전해온 동티 이야기와 뼈대가 똑같다. 마을 장승을 베었다가 변을 당한 변강쇠처럼, 창민도 자기도 모르게 금기를 건드린 값을 치른다.
다른 점은 시대뿐이다. 옛날엔 나무꾼이 장승을 벴다면, 지금은 인부가 무덤가의 뱀을 건드린다. 그리고 그 덕분에 개봉 당시 "동티가 정확히 뭐냐"는 검색이 실제로 급증했다. 백 년 넘은 민간신앙이 스크린 하나로 다시 대중의 입에 오른 셈이다.
요즘도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이야기로만 있는 게 아니다. 2026년 3월 한 방송 프로그램에는 이런 사연이 나왔다. 어떤 부부가 세상을 떠난 반려묘의 유골함을 집에 두고, 살아있을 때처럼 대해줬다. 그런데 그 뒤로 남편이 아내에게 소홀해지고, 늦게까지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늘고, 어느 날은 술에 취해 헛것을 보고 놀라 넘어져 팔까지 부러졌다. 부부 사이도 점점 나빠졌다. 아내가 답답한 마음에 무속인을 찾아갔더니,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유골함 옆에 놓아둔 음식에 꼬인 잡귀 때문이라는 답을 들었다.
이 이야기는 옛날 동티 이야기와 구조가 똑같다. 뭔가 건드리면 안 될 것을 건드렸고, 그 결과로 안 좋은 일들이 줄줄이 따라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이런 이야기는 안 없어질까
여기서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있다.
첫째, 사람은 원래 나쁜 일을 훨씬 잘 기억한다. 유골함을 집에 두고 몇 년을 아무 일 없이 잘 지낸 집은 셀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집 이야기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이야깃거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반면 저 부부처럼 안 좋은 일이 겹치면, 그 이야기는 방송을 타고 널리 퍼진다. 그러니 우리 귀에는 "그것 때문에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이야기만 잔뜩 들어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이야기는 아예 안 들어온다.
둘째, 사람은 이유 없이 나쁜 일이 생기는 걸 싫어한다. "그냥 운이 안 좋았다"는 말보다 "유골함을 잘못 둬서 그랬다"는 말이 훨씬 마음이 편하다. 이유를 알면 다음엔 조심하면 되니까, 뭐라도 원인이 있다는 게 오히려 위안이 된다.
셋째, 살아있는 사람들 사이의 문제이기도 하다. 누군가 "그거 별거 아니야"라고 말했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진지하게 걱정하고 있으면, 자기만 이상한 사람이 될까 봐 다들 조용히 있는다. 그러다 보면 실제로는 다들 반신반의하면서도, 겉으로는 마치 모두가 확신하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정리하면
동티라는 말은 결국 "이유를 알 수 없는 나쁜 일 앞에서, 사람이 이유를 만들어내는 아주 오래된 방식"이다. 변강쇠도, 영화 파묘도, 방송에 나온 부부도, 다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뭔가 건드리면 안 될 걸 건드렸다는 그 이야기가, 세상이 이유 없이 무너지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대신 채워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