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묘지 비용을 지자체가 내는 나라

노르웨이의 무료 묘지
노르웨이에서는 지자체에 주민으로 등록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는 지역에서 무료로 묻힐 수 있다. 스웨덴처럼 장례를 위한 세금을 따로 걷지는 않는다. 그 대신 지자체가 일반 예산으로 묘지 운영비를 낸다. 이 조용한 약속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그리고 그 약속에 아직 비어 있는 자리는 어디인지 들여다본다.
왜 노르웨이는 묘지를 공공의 일로 삼았나
노르웨이에서도 묘지는 오랫동안 교회의 곁에 있었다. 마을마다 교회 옆에 묘지가 놓였고, 지금도 교회 공동위원회가 묘지를 운영하는 지역이 많다. 그러나 법은 운영 주체와 비용 부담을 나누어 두었다. 일은 교회가 맡더라도 돈은 지자체가 책임지게 한 것이다. 1996년에 제정된 묘지법이 이 틀을 세웠고, 2021년 새 종교단체법이 시행되면서 묘지에 대한 지자체의 재정 책임이 묘지법 3조에 분명하게 적혔다.
운영 주체가 누구든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믿음과 세계관, 문화적 배경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주민에게 같은 서비스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자체에는 또 하나의 의무가 있다. 언제든 인구의 3% 이상이 들어갈 빈 무덤을 마련해 두는 일이다. 누가 세상을 떠날지 알 수 없으니, 마지막 자리만큼은 미리 준비해 두라는 뜻이다.
2014년에는 정부 위원회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화장과 매장은 공적 책임이며 유족에게 비용을 물려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내놓았다. 이 원칙이 온전히 실현된 것은 아니지만, 장례를 한 가족의 짐이 아니라 공동체의 몫으로 보려는 방향은 이때 분명해졌다.
무엇을 받고, 무엇을 내는가
주민에게 가장 든든한 약속은 묘지다. 매장 묘지와 화장 묘지를 20년간 사용료 없이 쓸 수 있고, 크비네스달처럼 25년까지 무료인 곳도 있다. 페르데르 같은 지자체는 주민에게 장례 예배당도 무료로 제공한다.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는 이도 혼자가 아니다. 사망 당시 살던 지자체가 신문 부고와 예배당 의식, 간단한 꽃 장식까지 갖춰 장례를 치르고, 비용은 남긴 재산에서 받는다.
다른 지역 주민에게는 값이 매겨진다. 오슬로 주민은 매장 묘지를 20년간 무료로 쓸 수 있지만, 오슬로 밖에 살던 사람은 20년치로 1만 7,240크로네(약 259만원)를 내야 한다. 아스케르는 다른 지역 주민에게 예배당 3,000크로네(약 45만원), 매장 6,860크로네(약 103만원), 유골함 안치 1,800크로네(약 27만원)를 받는다.(환율은 1크로네 약 150원)
주민이라 해도 모든 것이 무료는 아니다. 20년이 지나 묘지를 계속 쓰려면 사용료를 낸다. 오슬로는 1년에 862크로네(약 13만원), 5년에 4,310크로네(약 65만원)다. 관과 염습, 운구, 장례 진행은 유족이 정하고 부담한다. 한 장례지도사의 2025년 가격표를 보면 관 하나가 6,400크로네(약 96만원)에서 2만 7,500크로네(약 413만원)까지 이른다.
국가도 힘을 보탠다. 2026년 1월부터 장례 보조금은 최대 3만 898크로네(약 464만원)다. 국민연금 가입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주고, 고인의 재산과 보험금이 있으면 그만큼 줄어든다. 사망 장소에서 가까운 묘지나 화장장까지 20km가 넘으면 운구비도 지원한다.

아직 비어 있는 자리, 화장
이 약속에는 빈틈이 하나 있다. 화장이다. 매장은 무료인데 화장에는 수수료가 붙는다. 금액은 지자체가 정하고, 많게는 1만 크로네(약 150만원) 안팎이다. 이제는 화장을 택하는 사람이 절반을 넘는데도 제도는 매장의 시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6년 노르웨이 의회에는 화장 수수료를 없애 매장과 화장 모두를 무료로 하자는 제안이 올라왔다. 문화부 장관은 4월 22일 답변에서 화장을 무료로 하려면 지자체가 잃는 수입을 교부금으로 메워야 하고, 늘어나는 지출을 다른 예산과 견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2020년에도 의회가 같은 문제를 다루었지만 수수료는 유지되었다. 정부는 관련 사항을 검토해 공청회를 준비하고 있다. 이별의 방식이 달라지면 약속의 범위도 따라서 넓어져야 하는가라는 물음이 노르웨이에 남아 있는 셈이다.
한국에 적용한다면
스웨덴이 목적을 정한 부담금으로 장례를 지킨다면, 노르웨이는 일반 예산으로 지킨다. 한국에도 이 가능성을 보여 주는 움직임이 있다. 충북 제천시가 내년부터 시민의 공설 화장시설 이용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제천시 화장시설의 총사용료 수입은 올해 10월 기준 2억 6,100만원이고, 이 가운데 관내 이용자 몫은 4,650만원으로 17.8%다. 관내 주민의 비용은 면제하고 줄어든 수입은 다른 지역 주민의 요금을 조정해 메우겠다는 구상이다.
물론 한국에는 풀어야 할 숙제가 있다. 지자체의 재정 여건이 다르고, 화장장이 없는 지역의 주민은 이 혜택에서 비켜서 있다. 노르웨이가 화장 수수료를 두고 논쟁하듯이 한국도 무엇을 무료로 할지 범위를 정해야 한다. 그래도 한 번쯤 물어볼 만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마지막 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나라, 어디에 살든 장례비 걱정 없이 떠나보낼 수 있는 나라, 노르웨이의 묘지는 그 물음에 담담히 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