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노트

결혼식 같은 장례식

다비코 2026. 10. 3. 04:44


장례를 준비한다는 것에 대하여

결혼식을 앞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미리 정한다. 날짜와 장소를 잡고, 초대장을 보내고, 식순을 짜고, 축사를 맡을 사람을 고른다. 주인공이 어떤 사람인지가 식장의 음악과 사진, 음식에까지 스며들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인생의 마지막 의례인 장례식 앞에서는 사정이 달라진다. 갑작스러운 소식 속에서 정해진 절차를 따라가기에 급급하고, 영정 사진 속 고인은 있어도 고인의 이야기는 자리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왜 장례식만 준비하지 않을까. 아마도 죽음을 입에 올리는 일 자체를 꺼려 온 오랜 관습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준비하지 않은 이별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더 큰 혼란과 아쉬움으로 돌아온다. 이 글은 장례를 결혼식처럼 초대하고, 기획하고, 축하하듯 치른 사례들을 살펴보며 좋은 이별의 조건을 생각해 보려는 시도이다.

문상 절차는 있어도 장례식은 없다

한국 장례 문화를 두고 이화여대 최준식 교수는 문상 절차만 있을 뿐 정작 장례식은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조문객을 맞고 접대하는 일에 시간과 체력을 쏟다 보면 정작 고인을 기억하고 작별하는 시간은 짧아진다는 뜻이다. 그는 결혼식처럼 식순을 짜 보고, 초청할 사람을 미리 정해 보고, 신세를 진 분에게는 살아 있을 때 직접 만나 인사를 전하자고 제안했다. 장례도 준비할 수 있는 의례이며, 준비할 때 비로소 의미가 살아난다는 이야기이다.

이 말은 장례를 가볍게 만들자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장례를 더 진지하게, 더 주인공 중심으로 다시 세우자는 제안에 가깝다. 결혼식이 두 사람의 사랑을 사람들 앞에서 확인하는 자리라면, 장례식은 한 사람의 삶을 사람들 앞에서 정리하고 감사하는 자리여야 하기 때문이다.

살아 있을 때 여는 감사의 모임

이 제안을 가장 극적으로 실현한 사례가 생전 장례식이다. 일본 건설기계 기업 고마쓰의 안자키 사토루 전 회장은 건강할 때 자신을 아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며 생전 장례식을 기획했다. 초대장에는 장례식이라는 단어 대신 감사의 모임이라는 이름이 적혔고, 지인과 동창, 회사 관계자 등 1천여 명이 참석했다. 그는 약 6개월 뒤인 2018년 5월 81세로 세상을 떠났다. 이름 하나를 바꾸었을 뿐인데 자리의 온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올해 6월 한 방송에서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 김홍섭 씨는 백 번째 생일을 맞은 어머니를 위해 생전 장례식을 준비했다. 어머니가 떠난 뒤에 뒤늦게 슬퍼하기보다 살아 계실 때 사랑을 선물하고 싶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날의 자리는 눈물 대신 웃음과 감사로 채워졌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결혼식의 축하가 아름다운 이유도 같다. 축하는 당사자가 그 자리에 있을 때 가장 진짜가 된다.

음악과 춤으로 보내는 오래된 전통

장례를 축제처럼 치르는 문화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라 오래된 전통이기도 하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재즈 장례는 교회에서 묘지로 이어지는 행렬 속에서 처음에는 엄숙한 장송곡을 연주하다가, 매장이 끝나면 음악이 빠르고 경쾌해지며 춤과 노래가 터져 나온다. 한 생애를 축하하고 천국으로의 여정을 응원하는 의미이다. 이 행렬에는 거리를 지나던 사람들까지 합류하곤 한다.

마다가스카르의 파마디하나는 뼈를 뒤집는다는 뜻의 의식이다. 가족들은 조상의 유해를 꺼내 낡은 수의를 벗기고 새 천으로 다시 감싸며, 음악과 춤 속에서 기쁘게 하루를 보낸다. 이 자리에서는 울음을 권하지 않는다. 멕시코의 죽은 자들의 날에는 고인이 좋아했던 음식과 물건을 제단에 올리고, 알록달록한 꽃과 장식으로 무덤을 꾸미며 영혼을 환영한다. 이들 문화에서 즐거움은 슬픔을 부정하는 장치가 아니다. 슬픔을 함께 견디게 하는 방식이다.

빈소 없는 가족장이라는 또 다른 길

결혼식 같은 장례가 반드시 화려한 행사를 뜻하지는 않는다. 한국에서는 전혀 다른 방향의 변화가 조용히 번지고 있다. 빈소를 차리지 않고 가족끼리 고인을 보내는 빈소 없는 가족장이다. 장례지도사들의 말에 따르면 5년 전 1% 수준이던 이 방식이 지난해에는 20%에 이를 정도로 늘었다.

한 유족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빈소를 차리지 않고 3시간 동안의 추모식으로 장례를 대신했다. 가족과 지인 40여 명이 모여 고인의 삶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조문객 접대에 쓰던 시간과 에너지를 이별 그 자체에 돌려준 셈이다. 어떤 이는 부고를 내지 말라던 어머니의 뜻을 따라 가족끼리만 조용히 작별했고, 그 시간이 가장 큰 위로였다고 말했다. 작은 결혼식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주듯, 작은 장례가 더 온전한 작별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는 사례이다.

고인의 취향이 식의 문법이 될 때

장례를 기획하는 현장에서는 고인의 취미와 직업, 가치관을 반영한 맞춤형 장례도 제안되고 있다. 낚시를 좋아했던 고인에게는 바다를 주제로 한 영결식을, 책을 사랑했던 고인에게는 작은 서점처럼 꾸민 추모 공간을 마련하는 식이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이 흐르고, 생전의 사진과 영상이 갤러리처럼 전시되는 공간에서 조문객은 인사만 하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고인의 삶을 한 편의 이야기처럼 마주하게 된다.

결혼식에서 신랑 신부의 사진과 영상, 두 사람만의 이야기가 식을 채우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형식이 주인공을 위해 존재할 때 의례는 비로소 살아 있는 시간이 된다.

결혼식 같은 장례의 세 가지 조건

여러 사례를 종합하면 결혼식 같은 장례에는 세 가지 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주인공이 중심에 있어야 한다. 고인이 좋아했던 음악과 음식, 장소와 사람이 식의 모든 요소를 결정해야 한다. 관습이 아니라 사람이 기준이 되는 장례이다.

둘째,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결혼식이 준비의 결과물이듯 장례도 본인의 뜻을 미리 말해 두고 가족이 함께 이야기해 두는 데서 시작된다. 가장 흔한 실패는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간의 인식 차이에서 생긴다. 사전 합의가 곧 장례의 절반이다.

셋째, 슬픔의 자리를 지워서는 안 된다. 결혼식에도 부모의 눈물이 있듯 장례식에도 웃음과 눈물이 함께 있을 수 있다. 밝게 보낸다는 것은 슬퍼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슬픔을 감사와 함께 안고 간다는 뜻이다.

결혼식에서 장례식으로, 같은 마음

결혼식은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가겠다는 약속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자리이다. 장례식은 한 사람이 우리와 함께 살아온 시간을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자리여야 한다. 약속이든 회고든 소중한 순간은 준비하고, 초대하고, 함께 기억하는 것으로 완성된다.

오늘 저녁 가족과 이런 질문을 나누어 보면 어떨까. 나는 어떤 음악으로 보내지고 싶은지, 꼭 인사를 전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인지,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그 대화는 어색하게 시작되겠지만, 끝날 무렵에는 아마 가장 따뜻한 장례 준비이자 가장 깊은 삶의 대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