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장 후추모③ 장례를 두 번의 작별로 나누자는 제안

‘선화장 후추모’로 서두르지 않는 이별을 제안한다
사흘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는 생각이 장례의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다. 빈소를 차리고, 조문객을 맞고, 화장장을 예약하고, 장지를 정한 뒤, 제례까지 치른다. 유족은 슬픔을 충분히 느낄 틈도 없이 수많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제 장례를 조금 다르게 상상해보면 어떨까. 먼저 가족이 고인을 모시고, 추모의 자리는 며칠 또는 몇 주 뒤에 따로 마련하는 방식이다. 이 글에서는 이를 ‘선화장 후추모’라고 부르고자 한다.
화장률 94% 시대, 장례는 여전히 ‘사흘’에 묶여 있다
우리나라의 화장률은 2024년 94%까지 올라갔다. 매장은 6%에 불과하다. 화장이 사실상 보편적인 장사 방식이 됐지만, 장례 제도와 관행은 여전히 매장 중심으로 설계된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화장 수요가 특정 시간대와 날짜에 몰리는 현상도 문제다. 2025년 전국의 ‘3일 차 화장률’은 75.5%였다. 서울은 69.6%, 경기는 63.1%, 부산은 67.1%로 나타났다. 다만 이 수치가 곧바로 화장시설 부족이나 4일장·5일장의 증가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사정과 장례 일정 선택에 따라 화장 시점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유족이 원하는 오전 시간대와 특정 화장시설에 예약이 몰리는 현실은 분명하다. 화장 뒤 장지로 이동하고 제례를 치르려면 오전 시간이 편리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사망자 수가 늘어나면 지금과 같은 쏠림은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 보건복지부 전망에 따르면 연간 사망자 수는 2070년 7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한다.
먼저 안전하게 모시고, 그다음 자유롭게 기억한다
'선화장 후추모'는 작별을 두 번에 나누어 맞는 방식이다.
첫 번째 작별은 고인을 안전하고 존엄하게 모시는 시간이다. 고인은 전문가의 손에서 정성껏 안치 후 화장되고, 가족은 그 곁에 조용히 머물며 인사를 건넨다. 조문객을 맞느라 애쓰지 않아도 되고, 절차에 쫓기지 않아도 된다. 이 시간은 오직 고인과 가족의 것이다.
두 번째 작별은 자유롭게 애도하는 시간이다. 날짜도, 장소도, 함께할 사람도 유족이 정한다.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 수도 있고, 사진첩을 넘기며 웃을 수도 있고, 말없이 나란히 앉아 있어도 좋다. 49재나 100일, 첫 기일, 명절 전후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때에 맞출 수도 있고, 불교와 천주교, 개신교의 의례와 함께할 수도 있다.
사흘 안에 끝내야 한다고 믿어 온 작별을, 몸과 마음이 준비된 때로 옮기는 일이다. 장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애도에 시간을 돌려주는 일이다. 조문객을 맞는 일과 고인을 떠나보내는 일, 고인을 기억하는 일을 반드시 같은 날에 끝내야 할 이유는 없다.

장례의 가치는 규모가 아니라 작별의 방식에 있다
큰 빈소와 많은 조문객, 정해진 장례 절차가 모든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가족은 장례식장에서 조용히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한다. 어떤 가족은 집이나 종교시설, 작은 추모 공간에서 고인의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한다.
중요한 것은 장례의 규모가 아니라 고인과 어떻게 작별하느냐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추억을 나누고, 각자의 방식으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 장례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작별의 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전에 가족이 대화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나는 어떤 방식으로 보내지고 싶은가’, ‘장례식장에서 꼭 하고 싶은 일과 생략해도 좋은 일은 무엇인가’, ‘가족이 함께 모일 추모의 날은 언제가 좋은가’를 미리 이야기해두는 것이다. 자신이 원하는 작별의 방식을 적은 '엔딩노트'를 남겨두면, 결정의 부담이 유족에게만 쏠리는 일도 줄일 수 있다.

부고도 두 번 낼 수 있다. 첫 번째는 별세 사실을 알리는 부고이고, 두 번째는 추모의 날에 초대하는 안내다. 부의금을 받을지 여부와 추모 자리의 식사·답례 방식 역시 가족이 미리 정하면 된다. 핵심은 관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감당할 수 있고 고인을 잘 기억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는 데 있다.
서두르지 않는 작별을 위해
우리 사회는 죽음을 말하는 일을 여전히 어려워한다. 그래서 장례가 시작되면 준비된 관행을 빠르게 따라가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죽음을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별의 부담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유족에게 모든 결정을 한꺼번에 맡기게 된다.
이제는 질문을 바꿔볼 때다.
‘어떻게 사흘 안에 끝낼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고인을 제대로 기억할 것인가’라고 물어야 한다.
먼저 모시고, 나중에 다시 기억하는 것. '선화장 후추모'는 장례를 가볍게 만들자는 말이 아니다. 가족이 고인과 충분히 작별하고, 남은 사람들이 함께 기억할 시간을 만들자는 제안이다.
장례를 줄이는 것이 아니다. 작별을 나누는 것이다.

